사랑의 이름을 달고 대물림되는 폭력이란 얼마나 위험한가. 그럼에도 우리는 왜 폭력성을 버릴 수 없는가를 논한 이야기입니다.
가장 밑바닥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주인공에게서 독자들로 하여금 연민과 동정, 우리 날것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 불쾌감과 경각심을 느끼도록 의도했습니다.

주인공 금은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수수께끼 같은 남자 상을 만난다. 금이 호프집, 다방, 미용실을 전전하는 동안 상은 옥탑방에 콕 박혀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은 폭력과 욕설밖에 없던 금은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매일 밤 상을 폭행하고 상은 묵묵히 맞고만 있다가 금이 진정되면 매실차를 타다 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금은 상이 천재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상에게 묘한 거리감을 느끼는 동시에 시인의 사랑을 받는 여자라는 수식어를 탐낸다. 결국 금은 상의 원고를 강제적으로 발표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상의 '뮤즈' 에 대해 알고 싶어하며 금의 정체를 캐고, 이가 두려워진 금은 상과 함께 모텔과 여관을 전전하며 도망다닌다. 세간의 관심이 잦아들 즈음 금과 상은 처음 살았던 옥탑방으로 되돌아가는데, 천식을 앓던 상은 그간의 고생으로 건강이 심하게 나빠진다. 상이 죽을까 두려워하는 금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매일같이 상을 때린다. 그러던 중 상이 매실차를 타 오다가 다리가 풀려 넘어지게 되고, 불안감과 두려움이 폭발한 금은 상을 때리다가 그가 천식 발작을 일으켜 죽게 만든다. 금은 상의 시체를 끌어안고 자신의 삶을 회상하다가 늘 그녀의 편이 아니었던 경찰에게 전화를 건다.

마룻바닥 위로 깔아 둔 싸구려 카페트가 움직였다. 상은 풀물이 들어 있었다. 팔뚝과 광대뼈가 불그죽죽했다. 각질이 일어난 팔꿈치를 손가락으로 간지럽혔다. 그는 그녀의 손길을 가만 받았다. 어떠한 말도 더 하지 않았다. 상의 희끄무레한 피부 위로 글자를 적었다. 금, 상. 금 위로 상. 상 위로 다시 금. 그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녀는 그를 지나쳐 담뱃갑을 놓아두는 서랍으로 다가갔다. 삐걱거리는 나무 조각을 열고 싸구려 담배를 꺼냈다. 상에게 왜 값싼 담배를 피우느냐고 물으면 상은 늘 같은 대답을 해 주었다. 내는 값이 적을수록 더 독하지. 더 독해지지, 금아.

지인은 읽을 수 있는 ‘글자’ 가 가득한 종이를 응시했다. 안경알 너머로 빛나는 눈이 보였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한 짓거리를 떠벌렸다. 이제 어쩌겠느냐고 물었다. 금은 상이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랐다. 두들겨 패고, 목을 조르고. 분을 참지 못해 자신을 살해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상은 금을 조심스레 안았다. 딱 세 글자를 뱉었다. 놀랍군…….